강론 , 신부님말씀

연중 제 29 주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 29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곧 하느님 나라’에서 자신들을 중용해 달라고 청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복음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다른 제자들과는 좀 다르게 특별히 아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야고보와 요한 자신들도 ‘우리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좀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을 지닌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며 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청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청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난 다음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자신들도 한자리씩 꿰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뜻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종국에 가서는 스승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며, 또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다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느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가 권력을 쥐고 다스리는 자들의 나라라면, 하느님의 나라는 섬기는 자들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당신 자신이 섬기는 자의 자세로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음’을, 곧 십자가의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음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른 나라입니다. 이 세상 나라가 권력, 명예, 재물, 학식, 등으로 높고 낮음을 판단한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겸손, 용서, 희생, 봉사, 정의, 일치, 평화 등, 하느님의 속성을 닮을 때 하느님 나라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 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은 700년이 지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속죄제물이 되심으로써 많은 이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속죄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사랑의 삶, 겸손의 삶, 봉사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2 독서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뜻에 따라 한평생을 사신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는 10세 무렵부터 50년간 김밥장사 등으로 모은 전 재산 6억3000만 원 중, 3억3000만 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3억 원은 장애인 거주시설 성남 작은 예수의 집 건축비로 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40여 년간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온 공로로 지난 9월 14일 LG의인상을 받으셨습니다.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의 이러한 나눔은 평탄치 않았던 인생에서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10세 때 집을 나와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낮부터 한밤중까지는 안 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힘겨운 삶을 보냈습니다. 결혼 후에도 시련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남편과 이혼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았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번듯한 김밥가게도 마련했습니다. 이후 김밥가게가 있던 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재산도 조금씩 불어났습니다.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나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에게 돌려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불쌍한 이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할머니는 이 결심을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해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43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는 이후에도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습니다. 60대 들어서 김밥장사를 그만둔 후엔 11명의 지적장애인을 직접 집으로 데려와 밥을 챙기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친자식처럼 돌봤습니다. 이런 할머니는 최근 남은 재산인 월세보증금 2000만 원도 기부하고 복지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LG 의인상 상금 역시 가난한 이들에게 쾌척했습니다. 지금도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틈날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게 일상이라는 할머니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주님께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의 뜻대로 여력이 닿을 때까지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춘자 데레사 할머니께서 하느님 나라에 가시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맞아주실까요? 아마도 하느님께서 할머니를 꼭 끌어안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딸아 정말 고맙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여기에서 나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자구나.’ 라고 말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