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신부님말씀

연중 제 27 주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 27 주일이며 군인주일입니다. 이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군사목에 헌신하고 있는 군종신부들과 조국을 위하여 젊음을 불태우는 군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특별헌금도 정성껏 봉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말씀은 결혼생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더욱이 부부의 사랑은 사랑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깊이로 본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더 깊을지 몰라도,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지속시킨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부부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결혼의 목적’으로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부부애의 증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자녀 출산’입니다. 오늘은 혼인의 목적 중 첫 번째 부부애에 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하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당시 유다인들은 여성을 개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에 의하면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다”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 나오는 “이혼장을 써주라”는 조건을, 유다인들은 남성들에게 허락된 특권이라 생각하였지만, 남성들의 모진 학대에서 여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모세의 의도가 숨어있는 법이었습니다. 이혼증서는 그 이혼증서를 갖고 있는 여성이 전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이제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된다는 것을 전남편이 선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신명기의 말씀은 이혼증서도 없이 쓰던 물건을 버리듯이 자의적으로 아내를 버리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시어 하느님의 본래의 뜻에 따르려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며,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는 율법을 준 것은 “너희의 완고한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아내마저도 소유물처럼 생각하여, 이혼장을 써주기만 하면 “아내를 버려도 되는 듯이” 쉽게 생각하던 율법해석의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해석과 관련하여 ‘완고한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완고한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라 하더라도, 또 하느님의 뜻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효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이혼’의 근거로 삼은 모세의 율법 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 율법을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하여 악용하는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남성의 갈빗대로 여성을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갈빗대는 심장을 보호하고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리는 뼈입니다. 또 여성은 남성의 ‘알맞은 협력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자라는 단어는 상하 구분이 없는 대등한 관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부부는 서로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고 거들고 도와서 상대를 살리는 협력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셨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두 사람 사이에 함께 살아계신다는 뜻입니다. 남녀가 부부로 가정을 이루고 살 때, 두 사람 사이에 살아 계셔야 하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서로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고, 상대를 거들어 주어 살리고, 자비를 실천하여 용서하면, 은혜로우신 하느님께서도 그 부부 안에 살아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낸 얘기를 하나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번에 걸쳐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살의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소아마비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대고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정치가로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었습니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그는 자신의 방에만 갇혀 지냈습니다. 그의 아내 엘레나는 한동안 이런 그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도 맑게 개어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엘레나의 권유로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정원에는 꽃향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때 엘레나가 다정하게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뒤에는 꼭 이렇게 맑은 날이 오지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의 이 시련은 더 겸손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하느님의 뜻일 거예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루스벨트는 “하지만 나는 불구자인데, 그래서 당신을 더 많이 힘들게 할 텐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한단 말이오?” 하고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엘레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그 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단 말인가요?” 하고 대답했다 합니다.

 

부인 엘레나의 따뜻한 사랑이 열등의식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루스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뒤 엘레나의 말에 힘입은 루스벨트는 불구를 극복하고 예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으로 미국의 대통령에 연속해서 네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란 이런 것일 겁니다. 어렵고 힘들 때 옆에서 사랑으로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어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행가 중 옛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도 있습니다.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혼식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구두끈을 질끈 묶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했던 시절로, 첫아이를 임신하고 부부가 서로 좋아했던 시절로, 내 집을 장만하고 첫날밤을 맞이했던 시절로, 아이가 어느덧 자라 첫 출근을 했던 시절로, 그리고 그 아이가 결혼을 하여 새 생명을 잉태하였을 때로,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들이 우리의 사랑을 더욱더 깊고, 아름답게 꾸며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께서는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번 한 주간, 하느님으로 받은 사랑을 우리 부부가, 우리 가족이,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과 나누면서 기쁘고 행복한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