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신부님말씀

연중 제 22 주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 22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5주 동안 요한복음 6장의 빵을 많게 하신 표징 이야기와 생명의 빵에 대한 긴 담화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일부터는 다시 마르코 복음서의 말씀을 차례대로 듣게 됩니다. 오늘의 복음은 ‘사랑의 올바른 실천’에 대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에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라며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을 맺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율법과 규정들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과 규정을 지킬 때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1 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지키면서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지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정신은 사라진 채, 600가지가 넘는 삶의 제약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의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정결례에 대한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식사 전에 손을 씻을 것이냐, 씻지 않을 것이냐의 문제는 개인적이고 매우 사소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당시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태동되던 시기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1장에서 16장까지 나오는 ‘정결례법이나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정’들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한다고 유대교 출신 신자들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 과정에서 잘못하다가는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나 사도 바오로의 편지들에는 48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인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과 목 졸라 죽인 가축의 피는 먹지 말라’는 등의 규정을 여러 번에 걸쳐 알리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매우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논쟁을 통해 그 당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고,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논쟁을 걸어 왔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정결례법이나 음식에 관한 규정도 모두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율법이었습니다. 팔레스티나는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있고, 북쪽, 남쪽, 동쪽이 모두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는 1월과 2월 사이 잠깐 동안만 내립니다. 평소에는 습도가 낮고 기온은 높아 매우 메마른 지역입니다. 바람이 불면 주변 사막의 모래가 날아옵니다. 물도 굉장히 귀한 지역입니다. 한마디로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지역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주 씻고 부패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보존하는 일이었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정결례법과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은 사라진 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제시했습니다. 꼭 꼬투리를 잡아서 못살게 굴려는 나쁜 심보를 보는 듯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하느님과의 친교를 참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정결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반대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과 같은 사소한 규정을 사람들이 지키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날카롭게 관찰할 줄 알면서, 또 그러한 규정을 지키는 데에는 그토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그러한 행위들이 생겨난 근거와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음속은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닦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것은 조상들의 전통에 따른 규정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의 전통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전통적 규정들을 지킨다고 하면서, 본래의 의도를 망각해 버린 굳은 마음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전통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계명과 훌륭한 제도도 악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더 잘 지키려고 시작한 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적 욕심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가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일찍이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였고, 예수님 또한 그러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혹시라도 그 일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늘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늘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늘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찬미와 흠숭을 드리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 코로나 19로 인하여 지난 7월 12일부터 65명 이내로만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모두 방역수칙 철저히 지켜주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