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신부님말씀

연중 제 16 주일 나해 2021년(7월18일)

연중 제 16 주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 16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말씀은 지난주의 복음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한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또 다른 교육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선교여행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선교여행을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제자들이 선교여행에서 했던 일들은 스승 예수님께서 선교여행 중 하셨던 일들과 똑같은 일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을 그대로 이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피곤할 테니 좀 쉬어라.’ 라는 뜻으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두 제자의 ‘파견’과 ‘귀환’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활동’과 ‘쉼’의 관계를 말해주는 의미 있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지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 의하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라는 표현으로 보아,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한 기대는 거의 폭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중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군중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제자들과만 “따로 외딴 곳에서 쉬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어떻게 보면 군중의 기대를 저버리시는 것 같이 보입니다. 더구나 오늘 복음말씀의 끝 구절을 보면 예수님을 찾아 몰려온 군중의 상태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이 불쌍한 처지에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한 처지의 군중을 저버리시려고 하신다는 말인가? 물론 아닙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끝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쉼’은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는 군중을 더 잘 돌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명을 받고 파견되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의 삶의 출발점이자 귀환점, 곧 그들 삶의 중심은 스승 예수님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선교활동이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했던 것처럼, ‘쉼’ 또한 ‘예수님과 함께 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사도직 활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직 활동의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은 스승 예수님과의 친교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샘물은 고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샘물을 계속해서 퍼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원하고 맑은 영적 샘물을 이웃들에게 지속적으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침묵과 기도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성심-자비롭고 측은해 하시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며, 영적 샘물을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와 수도자는 1년에 한 번 8일 동안 연례피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는 필수 사항입니다. 우리가 보통 피정이라고 하는 단어는, 워낙은 ‘피세정념’ 이라는 단어의 줄임말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세상을 피하고 생각을 맑게 하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선교여행을 다니시는 도중에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고 복음은 여러 차례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 여러분도 1년에 한 번은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바쁜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는 주일미사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주일이 되면 우리 신앙인들은 한 주간의 복잡한 삶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예수님께 달려와 신앙의 형제자매들과 만납니다.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조용히 들으면서, 우리의 삶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삶의 방향감각을 되찾습니다.

 

또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심으로서 세상을 살아 갈 영적 양식을 얻습니다. 그렇게 될 때, 주일 미사 시간은 ‘의무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또 하나의 ‘짐’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 앞에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와 새로운 힘을 얻고 가는 기쁨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미사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잠깐이라도 하느님과 일치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마감하면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 삶의 지향이 늘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 하루에 1시간 성체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며, 사제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저도 새사제 때는 열심히 성체조배를 하려고 노력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타성에 젖으면서 성체조배를 열심히 하질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엉망으로 살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신학생들에게 성체조배가 왜 필요한지 강조를 하셨을까요? 그 대답이 오늘 제 2 독서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를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고요 속에 예수님과 함께 쉴 줄 아는 태도’는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시로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가르침을 교회에 남겨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곰곰이 생각할수록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교회활동은 늘 기도에서 출발하고, 기도로 끝나야 합니다. 다른 한편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일하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활동이 없는 기도는 형식에 흐르기 쉬우며, 형식적인 기도는 위선적인 신앙생활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일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 코로나 19로 인하여 지난 7월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방송 송출을 위해서 20명 이내로만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모두 방역수칙 철저히 지켜주시고,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