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주님 세례 축일 나해 2021년(1월10일 강론)

주님 세례 축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의 숨은 생활을 청산하시고,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성탄 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되신 것을 아시고는 고향 나자렛을 떠나 요르단 강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기를 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기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도 없으셨지만,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예로니모 성인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셨기에 율법의 모든 규정을 겸손하게 이행하시고자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시고 팔일 만에 율법에 따라 성전에 봉헌되셨으며 할례도 받으셨던 것이다.

둘째,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에 앞서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의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였음을 인정하신 것이다.

셋째,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요르단 강에 내려오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의 세례에서도 성령이 내려오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또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장차 우리에게 주실 세례성사를 미리 예시해 주시는 사건이다.”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받으신 예수님의 세례는 구약의 완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앙인들입니다. 어떠한 동기로 세례성사를 받았던 간에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은총은 모두 같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우리 몸은 성령께서 머무시는 궁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면 “세례의 다양한 효과들은 성사 예식의 감각적 요소들을 통하여 표시된다. 특히 물에 잠기는 예식은 죽음과 정화의 상징이지만 재생과 갱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두 가지 중요한 효과는 죄의 정화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례예식 중 침수예식에는 이마에 물을 붓는 방식과 세례수에 온몸을 담그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마에 물을 붓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교회에서는 온몸을 담그는 침수방식을 사용합니다. 침수방식은 이렇습니다. 세례성사가 있는 날에는 이 제대 위에 작은 욕조가 준비됩니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받는 예비신자들은 하얀 옷을 입고 주례 사제의 지시에 따라 몸을 세 번 물속에 담그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거로워서 하지 못하는 이 침수방식이 바로 이러한 세례성사의 효과를 잘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침수로 세례성사를 베풀 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죄 중에 살았던 예비신자가 죽는 것을 의미하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거룩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들으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말씀처럼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지울 수 없는 세례의 인호가 새겨진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셨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복음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깊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첫째, 예수님의 세례는 그리스도교 세례성사의 제정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물의 세례였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죄를 용서하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느님 앞에 온전히 당신 자신을 순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신약의 세례는 죄를 용서하시는 성사로 제정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세례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기계시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위로 비둘기 형상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그 위에서 아들을 확인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짐으로써 온전한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계시되었습니다. 이로써 신약의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의 시대를 선포하며 독자적인 성령의 능력을 부각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공현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통해서 아기 예수님께서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으심으로써 온 천하에 그리스도로 드러나심을 경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세례는 그리스도로써의 본격적인 하느님의 사업을 시작하시면서 만천하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또 다른 공현 사건입니다. 이것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성부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증됩니다.

 

넷째, 예수님의 세례는 기도와 성령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복음 선포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듯이,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 세례성사의 원형이요 길잡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통하여 복음 선포의 공생활을 시작하셨듯이 우리도 세례성사를 받는 순간 복음 선포의 공생활로 초대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길은 이제 우리의 삶이요 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에게 다른 삶과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광야도, 갈릴래아도, 예루살렘도, 이제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며, 최종적으로 그분의 십자가 또한 우리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 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주기 위함이다.” 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적용된 사명이었지만, 예수님께 주어진 모든 사명은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갈 때 우리는 먼 훗날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한 번 따뜻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말씀을 말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가졌던 첫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주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백신과 치료약이 제공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건강관리 잘 하시고, 방역수칙 철저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성당에서 얼굴을 뵙고 미사를 드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