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주님 공현 대축일 나해 2021년(1월3일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나해 2021년

 

 

찬미예수님.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며 2021년도의 첫 주일입니다. 오래전에는 오늘 축일을 ‘삼왕내조첨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3명의 왕이 아침에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러 찾아 온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축일의 주인공이 아기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러 온 3명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의 축일을 주님 공현 대축일이라고 하며,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인들을 왕이 아닌 박사로 칭하고, 또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를 드렸다는 사실보다는, 아기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 주셨다는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 또한 아기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사실 전 인류를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백성’이라고는 하지만, 꼭 유다인만을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십니다. 다만 유다인을 통해서 오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도 먼저 유다의 목자들이 찾아와 경배를 드렸으며, 이어서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유다인이었지만 지위가 낮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박사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을 위한 왕이 아니라, 전 인류, 전 세계, 전 시대를 걸쳐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상속자이며 수혜자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현’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현’이란 단어는 ‘나타내다.’, 또는 ‘열어 보이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님 공현’의 뜻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공적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 는 것이며, 이것은 ‘탄생하신 예수님께서는 아기이시지만, 모든 민족들에게 그리스도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전례는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다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공현 축일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한 사건, 곧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내신 주님’을 기념하는 축일이기도 하지만, 더욱더 미래에 일어날 일, ‘심판자로서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해 주는 축일이기도 합니다. 기다리는 신앙인, 이것이 초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자세였습니다.

 

오늘의 제 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이 장차 하느님의 은혜로 얻게 될 미래의 영광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지금은 강대국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참하게 짓밟혀져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시어 만백성이 보물과 선물을 가져오는 위대한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수백 년 뒤에 그대로 적중이 되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고,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전 인류를 대표해서 보물을 들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예수님 때문에 그 이름이 빛나게 되었으며, 또한 수백 년 동안의 치욕적인 사건들을 모두 보상받았습니다. 드디어 믿음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직접 머무르시고 가르치시는 선택받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는 진리를 찾아 나선 우리 신앙인들의 앞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아 별을 보고 떠났습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별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안락한 자신들의 삶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말입니다. 동방 박사들도 과거의 편안함이 그립기도 했을 것이고, 회의에 빠져 칠흑 같은 어두움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가서 길을 묻기도 하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하느님을 향한, 진리를 찾아 떠난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만남을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생애를 투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보물을 품에 간직하고 진리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용기와 믿음과 희망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정성스런 마음이 하늘을 열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의 길은 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나그네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긴 장마 때문에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찬바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픔도 겪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참고 걷게 되면, 결국은 우리도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얻으려는 소망보다, 우리의 것을 봉헌한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때 그 감격과 기쁨이 큰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동방 박사들의 행위는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들은 고생스런 먼 길을 걸었고, 잠깐 동안 아기 예수님을 뵙고는 자신들이 가지고 온 최고의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진리를 찾았습니다. 진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신앙 안에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갑니다.

 

우리도 ‘신앙’이라는 먼 길을 희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걸어가야 합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소망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선물을 봉헌하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신 날입니다. 우리도 동방 박사들처럼 희미한 불빛과도 같은 희망이지만, 온전히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며 걸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내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동방 박사들이 만났던 그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지난 2020년에는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이 곧 올 겁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용기를 갖고, 꿋꿋이 이 힘든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