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대림 제 3주일 나해 2020년(12월13일 강론)

대림 제 3 주일 나해 2020년

 

찬미 예수님! 오늘은 대림 제 3 주일이며 자선주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어 본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평화방송 티비를 통하여 미사를 봉헌하시기 바라며, 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편안하게 본당에서 얼굴을 뵙고 미사를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해마다 교회는 사순절과 대림절, 두 전례시기에 회개를 선포하며 신자들로 하여금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만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며,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올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순시기와 대림시기가 통회 속에서 늘 울면서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순 제 4 주일과 대림 제 3 주일은 오히려 기쁨을 묵상하며 대축일을 준비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기쁨’ 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 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의 기쁨을 전해 주고 있으며, 제 2 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말씀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모든 관심을 자기보다 뒤에 오시고, 또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시지만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에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비록 세례자 요한 자신은 무대 뒤편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운명을 지녔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이 그리스도께 쏠리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기쁨이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을 생각하며 그분을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을 봉헌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삶을 본받으려는 노력과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삶이 완벽한 삶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로 변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합당한 삶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 중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갖는 위대성과 사명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반된 두 그룹을 봅니다. 하나는 하늘의 얘기를 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람인 세례자 요한과 땅의 얘기를 하고 있는 땅의 사람들인 사제들과 레위인들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당시 지도자 계급에 있던 유다인들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만을 쫓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 자세는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아니라, 심문하는 식의 논쟁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 앞에서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자세가 아니라, 자신들을 보낸 사람들에게 보고하고 그들의 결정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가운데 와 계신 참된 ‘진리’, 곧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태도는 이들과 완전히 구분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태도는 겸손하였으며 진리를 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단호하게 얘기 했습니다. 또한 주님의 날을 기다리고 있던 엘리야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기적적인 일들을 새롭게 하고 모세의 뒤를 이어야 했던 예언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직 ‘빛’을 증언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며,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라고 했습니다.

공관 복음에서 이 말은 이사야의 예언이 세례자 요한의 사명을 만천하에 선포하기 위해서 인용되고 있지만, 요한 복음 사가는 이 말을 바로 세례자 요한 자신의 입을 통하여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이 역사적인 사실 보다는 신학적인 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나의 ‘소리’로서 희망과 구원과 회개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세례자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가 알리고자 하는 예수님의 사명을 증언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갈망과 원의를 불러일으키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행위에서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 자리를 마련하여 드리는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진실하고도 성실하며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만, 성탄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제 1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도래하면 가난한 이들, 마음이 부서진 이들, 잡혀간 이들, 갇힌 이들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 성서 구절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바로 당신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구원 역시 예수님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심판자로써 다시 오실 예수님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또한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기쁨, 기도, 감사, 이 세 가지 권고가 연이어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자라나는 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갖 악이 자행되고 있는 세상에서 늘 기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생활환경은 우리가 늘 기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보다는 불평불만이 우리 마음 안에 가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세속생활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생활은 깨끗한 희생제물을 사르는 불과 같이 세속생활을 변화시켜 하느님께 대한 찬양이 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라고 하시며, 모든 역경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우리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준비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다시 뵙게 되는 그 날에까지 항상 기뻐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분께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때가 다 되어 새벽이 다가왔습니다. 통이 트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을 다하여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주임신부 이용희 사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