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연중 제 23 주일 가해 2020년 9월 6일 – 강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강화로 인해 미사에 참석치 못하는 신자분을 위하여 이번주 강론을 올려 드립니다.

미사에 참석치 못하는 신자분은 대송 및 TV평화방송을 통하여 신앙 생활을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중 제 23 주일 가해 2020년 9월 6일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은 연중 제 23 주일입니다. 지난 연중 제 21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수위권을 맡기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2개의 독서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의 직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톨릭교회를 설명할 때 보통 4가지의 특성을 갖는다고 얘기합니다. 그 특성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설립되었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며,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의 전례를 행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베드로를 처음으로 하는 예수님의 대리자인 교황을 중심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3가지 직무가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직무, 가르치는 직무, 봉사하는 직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선교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거룩하고, 가르치고, 봉사하는 직무에 충실한 공동체를 통해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또 우리 가톨릭교회는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의 높낮이가 없이 함께 사귀고, 섬기고, 나눔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시고자 했던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구현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그 목표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사랑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오늘의 2개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 1 독서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의 가르치는 직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여건이 좋던 좋지 않던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말을 해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구약의 예언자들은 당시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나서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에 직면만 시대적인 징표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이 시대의 징표는 ‘서로의 생명을 살려주고 하루빨리 코로나 19를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방역당국의 정책을 철저히 수행하면서 기도 생활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국민으로써 당연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우리의 행동을 보고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은 우리 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열흘 전, 지난 8월 26일 정오 연합뉴스의 코로나 19 누적 집계를 보면, 5월 이후 집단 감염 사례 중, 개신교 교회 관련이 1681명 감염되었으며, 불교 사찰 관련이 92명 감염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톨릭교회는 얼마냐? 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전혀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통계입니다. 신자 여러분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시고, 손소독도 하시며 방역수칙을 잘 따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이것이 공동선이며 시대적인 징표입니다. 이것을 우리 교회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얘기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 1 독서가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오늘의 복음 말씀은 교회의 거룩하게 하는 직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교회론을 중요하게 생각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바로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마태오 복음서가 쓰인 것은 2000년 전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또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하여간 오늘의 복음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거룩하게 하는 직무, 가르치는 직무, 봉사하는 직무를 가지며,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랑으로 완성된 공동체는 아닙니다. 단점도 많고, 가야할 길이 먼 공동체입니다. 이런 모습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랑과 믿음 안에서 잘못한 형제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를 오늘 복음 말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잘못한 형제가 부끄럽지 않도록 둘이서 이야기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충고를 듣지 않을 때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동원하여 견책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단호하게 가르칩니다. 이것은 교회의 충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지 않는 이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거룩하게 하는 직무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친교 모임이 아니라 신앙인의 모임의 성격을 갖는 이유도 함께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교회가 참다운 공동체로서 일치와 친교, 그리고 복음을 실현하는 힘의 원동력은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도 이 기도 안에서 해소되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늘 제자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여러 계명들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봉사하는 직무에 해당됩니다. 사랑으로 봉사할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 그리고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하는 직무, 가르치는 직무, 봉사하는 직무에 충실한 공동체의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며,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공동체는 친교 모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나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