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사순 제 2 주일 가해 2020년(3월 8일 주일 강론)

사순 제 2 주일 가해 2020년

 

찬미예수님.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본당에서 미사가 중단된 지 12일이 되었습니다. 신자 여러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다시 뵙는 날까지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순 제 2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을 주는 사건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당신의 천상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다니시며 ‘하늘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고 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이 많으시고 선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신지에 대해서, 둘째는 ‘하느님 나라’는 믿음의 나라이고 사랑의 나라이며 영광의 나라임을, 셋째는 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닌,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가능한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으며, 빵을 많게 하시어 굶주린 이들을 배부르게 하셨고, 풍랑을 가라앉히는 등, 하느님의 능력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3년간의 공생활을 마치시고, 이제 당신께서 다시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실 때가 되시자, 카이사리아 필립비 지방을 지나시는 길에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서서,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아주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수히 많은 섞는 밀알이 필요한 것이 아니셨습니다. 다만 ‘하나’가 필요하셨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첫 번째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신 다음, 당신이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걷게 될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마지막 배려였으며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베드로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고통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부활을 원하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마지막에 가서는 영광의 길에 이르게 되지만, 그 과정은 고통과 수난의 길입니다. 따라서 고통과 수난 없이 영광의 길에 들어서려는 것은 인간적인 욕심일 뿐이며,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오늘의 제 1 독서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제 1 독서는 아브람에게 이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 도시인 ‘우르’ 라는 곳에 살았는데, 그곳은 여러 우상신을 섬기는 도시였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옛 세상에서 새 세상으로의 출발이었으며,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을 향한 탈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고생스럽고 쉽지 않을 삶이 시작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기원전 2000년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고조선 시대이며 씨족사회였습니다. 당시에 씨족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느님의 말씀만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은 수많은 후손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미리 걸어가신 전형이 되셨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아브람, 모세, 엘리아, 예수님, 이분들은 모두 자신들이 머물던 자리를 떠나 새로운 삶의 장소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분들이십니다. 새로운 곳의 출발이 항상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좋은 결과로 나타났지만, 그 과정은 고생과 고통이 수반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하는 그대여,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부르셨다는 뜻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삶,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며, 새로운 삶이란 다름 아닌 고통이 수반되는 삶을 뜻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고난으로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사순 시기에는 이렇게 뜨겁게 고통 받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겪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밀알은 썩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썩지 않은 밀알은 한 알 그대로 묻혀있지만, 썩고 싹을 틔울 때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거룩한 변모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아브라함도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고, 예수님도 떠났으며, 사도 바오로도 떠났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이 한마디 때문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어떤 영광의 문에 우리가 다다르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영광을 얻을 것이라 희망하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합시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를 희망하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따라 걷는 나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많이 힘드시겠지만 기도하시면서 차분히 이 어려운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또 개인위생 관리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본당 공동체와 신자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용희 사도요한 신부

 

라파엘로 산치오_거룩한 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