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말씀

사순 제 1주일 가해 2020년(3월 1일 주일 강론)

사순 제 1 주일 가해 2020년(3월 1일 주일 강론)

 

찬미예수님. 지난 2월 26일 재의 수요일부터 본당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투병 중에 계신 환우들, 보호자들, 의료진들, 그리고 우리 본당 공동체와 신자 여러분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신자 여러분과 함께 미사를 드리지 못해서 아쉽지만, 하루빨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미사를 봉헌하기를 바라며, 사순 제 1 주일 강론을 적어 보았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부터 3세기 초까지는 사순 시기가 없었습니다. 부활 대축일 전 2-3일간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했었습니다. 오직 부활 대축일을 중심으로 ‘파스카 성삼일’ 전례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부활 대축일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준비하기 위해 회개와 보속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325년에 있었던 니체아 공의회 이후 40일로 기간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600년경에 그레고리오 교황 시절부터 재의 수요일이 사순 시기의 시작일로 정착되었습니다.

 

이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그 사건을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 동안 재를 지켰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또 엘리야도 호렙 산으로 갈 때 40일 동안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기도하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며 40일 동안 참회와 보속, 그리고 희생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신자들은 이 기간 동안 지난날의 잘못을 돌아보고 주님의 계명에 더 충실하게 살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시기를 ‘40일 동안의 피정기간’ 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에 종사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피정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피정은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새롭게 태어남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40일 동안의 피정을 얼마나 잘 지냈느냐에 따라 우리는 기쁨의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순 시기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때입니다.

 

오늘의 제 1 독서는 원조들의 창조와 죄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시험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인간은 원죄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간에겐 죽음도 고통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편안하게 살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마 그랬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천사나 어떤 영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의 원조들의 창조 이야기와 타락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자유의지란 두 개 이상의 가능성 앞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동물은 본능이라는 하나의 행동양식 밖에 없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과 고뇌를 겪어야만 합니다. 여기에 인간이 유혹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사에 유혹을 당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제 1 독서에 묘사되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와 쳐다보니 먹음직하여 ‘먹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고뇌하는 모습은 바로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1 독서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충실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 그래서 죄를 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끝까지 충실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냐 파멸이냐에 대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으냐? 에 달려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불행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하여 그 말씀을 어기도록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정말 그들은 그 열매를 따먹은 후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그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 이상의 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하느님과 같이 되려는 것은 사탄의 말을 들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행동은 죄를 낳게 되었고 세상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이와는 상반된 내용이 오늘의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자로부터 유혹을 받으시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따라서 참 사람이시기에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며 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혹자가 나타나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빵에 대한 유혹, 자기과시와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과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 등은,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매일 당하는 유혹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당하실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내 뜻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원조들과 예수님께서 다른 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었느냐? 두지 않았느냐? 내가 드러나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하느님께서 드러나기를 바라느냐? 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히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이는 겸손되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절제와 희생을 하는 만큼 성숙된다고 하였습니다. 간디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먹고 싶은 대로 먹다 보면 모든 욕심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깊이 음미해 볼 말입니다. 모든 욕망은 한 줄기에 달린 감자들처럼 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악과 한 번 타협하고 나면 결국 줄줄이 걸려 넘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사순 시기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온갖 악의 사슬에 묶여 있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영적인 자유로움을 되찾는 은총의 시기이며, 진정한 인간성 회복의 시기입니다. 죄의 세력보다는 은총의 힘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때입니다. 이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하며, 이번 한 주간도 우리의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나가는 은총의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아직 치료약과 백신이 임상시험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현재는 개인위생(손 씻기, 마스크 착용하기, 기침 가리고 하기)을 잘 챙기시고 고단백 음식과 신선한 야채, 그리고 비타민C,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하시기 바랍니다. 지역 감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저질환을 갖고 계신 어르신들은 외출을 삼가 해 주시고, 꼭 외출을 하셔야 하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모르는 분들과는 얘기를 나누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신자 여러분과 함께 미사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이용희 사도요한 신부